3卷1冊 : 四周雙邊 半郭 20.2 x15.9 cm, 有界, 10行20字 註雙行, 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 ; 31 x 20.7 cm.
조선 중기의 학자인 조진도의 시문집이다.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주곡리 출생, 조운도(趙澐 道)의 형제이다. 1759(영조 35)년증광별시에 합격하였다. 그 후 전시(殿試)에서 전강(殿講)에 뽑혔다. 그러나 김상로(金尙魯), 홍계희등의 모략으로 급제를 취소당하였는데 조선시대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1778(정조 2)년 사미정(四未亭)으로거처를 옮겨 지내다 생을 마쳤다. 태백산 각화사(覺華寺)에서 독서할 때 이광정을 만나 문의(文義)를 강론하였더니 이옹(李邕)이선생의 해박한 견해에 경탄하였다고 한다. 산 속에 은거하여 일체의 영욕을 떠나 오직 독서 와 시문에힘쓰고 거문고에 능한 손님이 오면 연주하는 것을 듣기를 좋아했다. 1788(정조 12)년 조부의 복관과 함께 복과(復科)되었다.
이 문집은 1898년 현손 병희(秉禧) 등이편집, 간행하였다. 시는 주로 자연을 읊은 것이 많은데 「춘양팔경(春陽八景)」의 한수정(寒水亭), 창애정(滄厓亭), 수월암(水月庵) 등과 이황이 지은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을 차운한 시는 완숙한 정서를 표현한 뛰어난 작품이다. 당시의 문사들과 수창(酬唱)한시도 상당수 차지하고 있고 이상정, 이종악(李宗岳), 김상열 (金相說), 김종경(金宗敬), 이중광(李重光) 등 당시 석학들에 대한 만사(輓詞)가많다. 서(書) 중채제공, 이광정, 김종덕,정종로 등과 왕복한 서한에는 주로 경전(經典), 훈고(訓詁)에 대한 논술이 많다.